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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하 아주 보통의 하루

사라지는 골목, 기억 속 풍경은 어디로 갔을까

by 라이프 크리에이터 오드리냥 2025. 6. 10.

아파트 숲이 밀려들기 전, 도시에는 골목이 있었어요. 길은 좁았지만, 마음은 넉넉했던 그 공간. 철수와 영희가 고무줄놀이를 하던 흙바닥, 김치 담그는 냄새와 라면 끓이는 냄새가 뒤섞였던 저녁 무렵의 공기. 그리고, 이름 없는 골목마다 작은 세계가 있었어요.

이제는 사라지고 있는 골목들. 오늘 포스팅은 그 잊힌 풍경 속으로 잠시 걸어가 보려 합니다.


사라지는 골목
사라지는 골목

 

도시의 틈, 골목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다

 

골목은 작은 우주였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엔 큰 길보다 골목이 많았어요. 출근길 아버지가 지나다니던 좁은 통로,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구슬치기 하던 모퉁이, 그리고 비 오는 날이면 빗물이 모여 개울처럼 흐르던 홈통 아래 작은 세계.
골목은 작았지만 그 속엔 온 우주가 담겨 있어요. 낮에는 가게 아주머니의 잔소리가, 밤이면 윗집 라디오 소리가, 철마다 바뀌는 냄새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이며 하나의 살아 있는 풍경이 되었죠.

골목의 풍경은 시간이었다
서울 종로구 누하동, 골목골목이 살아 있는 미로 같던 동네였지만 지금은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반듯한 벽돌길로 바뀌었죠.

골목 속 낮은 담벼락과 들꽃, 어설프게 박힌 우편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카페와 갤러리가 대신하고 있어요. 어느 날 그곳을 다시 찾은 주민 A 씨(66세)는 말했여요. 길이 말끔해졌지만, 예전처럼 정이 안 가요. 골목은 조금 삐뚤빼뚤해야 좋은데
맞아요. 골목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사람과 시간이 엉겨 붙어 있는, 느리고 깊은 길이었죠.

골목은 추억을 보관하는 창고였다
충청도 시골마을에서 자란 40대 직장인 B 씨는 엄마가 저녁 준비할 때, 우린 골목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라고 기억하고 있죠.
한 명이 숨을 때면, 나뭇가지 하나로 여기 숨어 있어요 하는 사인을 주기도 했죠.
지금은 시멘트로 덮여버린 골목들, 하지만 그 안에 남겨진 냄새, 발자국, 웃음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요.
골목은 말하자면, 우리의 아날로그 하드디스크. 무심코 지나쳤던 골목이 사실은 가장 소중한 기억을 고이 간직한 곳이기도 하죠.

왜 골목은 사라지는가
도시는 점점 편리해지죠. 도로는 넓어지고, 골목은 차가 들어설 수 없다는 이유로 차례차례 재개발되고 있죠.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로, 오래된 골목들은 도시의 지도에서 지워지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불편했을까? 우린 거기서 계절을 느꼈고, 관계를 배웠고, 기다림의 미학을 알게 되었죠. 급하게 길을 잃어도, 누군가 문을 열고 어디 가요? 묻던 골목. 불편하지만 인간적인, 그 길이 사라지고 있어요.

골목이 남긴 것들
광주의 양림동, 전주 한옥마을의 외곽, 부산 감천문화마을의 계단 사이사이. 그나마 아직은 골목의 감성이 살아 있는 곳들이 있어요.
요즘은 골목을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인스타 감성이라고도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현대인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결핍의 보상일지도 몰라요. 디지털 세대조차 아날로그 골목에서 안정을 느끼고 있어요. 왜냐하면, 골목은 정보가 아니라&nbsp이야기가 흐르던 공간이었으니까요.

골목을 다시 살아나게 하려면
사라진 골목을 되돌릴 순 없지만, 골목성을 지키는 방식은 있어요. 단순히 길을 좁게 만든다고 골목이 되진 않아요. 거기엔 관계, 커뮤니티, 그리고 시간의 층이 있어야 해요. 서울 성수동처럼 오래된 산업 지역을 재해석하거나 순천의 드라마 촬영장 골목처럼 일부러 재현한 사례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도 콘텐츠로서의 골목일 뿐, 진짜 골목은 누군가의 삶이 스며든 살아 있는 공간일 때 비로소 감동을 주죠.

 

골목의 풍경 시간
골목의 풍경 시간

 

추억을 보관하는 창고 골목
추억을 보관하는 창고 골목

 

 

MZ세대는 골목을 경험한 세대일까?

 

기억은 없지만, 향수는 있다.
그들은 좁은 골목에서 구슬치기나 고무줄놀이를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낡은 담벼락 앞에서 인스타그램 사진을 찍고,
레트로 감성의 카페를 찾아 나서죠. 알지 못했지만, 알고 싶어 하죠. MZ세대는 골목문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사라져가는 풍경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자기식의 방식으로 골목을 재구성하고 있을까?

골목을 모르는 세대, 그러나 감각하는 세대
MZ세대는 골목문화의 전통적 의미를 잘 모르죠. 그들에게 골목은 어린 시절의 놀이터가 아니라 찍으면 잘 나오는 공간,
컨셉이 확실한 장소로 기능하고 있죠.
서울 연남동의 좁은 골목 사이, 자판기 하나와 오래된 벽돌담 앞에서 누군가는 #인생샷을 찍고 있어요. 감성 있다 라고 말하는 그 말속엔 보지 못한 시간에 대한 로망이 스며 있죠. MZ는 골목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 골목이 가진 '정서'를 직감으로 느끼고 있죠.

골목의 재해석: 뉴트로에서 감성까지
MZ세대는 아날로그 감성에 열광하죠. 테이프, 필름카메라, 타자기, 그리고 골목. 이것은 모두 연결된 코드에요. 골목의 벽에 기대어 찍은 사진 한 장은 MZ에게 힐링, 쉼표, 정서라 할 수 있어요. 바쁘고 디지털 한 세상에서 골목은 한 템포 쉬어도 괜찮은 곳으로 기능하고 있죠. 즉, MZ는 골목을 체험형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어릴 적 기억은 없지만, 이제는 의도적으로 경험하고 싶은 공간이 된 것이죠.

골목문화와 MZ의 SNS 감성
요즘 골목은 감성 콘텐츠의 보고라 할 수 있어요. 익선동, 을지로, 성수동 골목은 MZ세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아요.
이런 골목이 서울에 있었어?
여기 완전 일본 감성이네
빈티지 카페인데 분위기 대박이야
그들은 골목을 발견하고, 해석하고, 공유하죠. 공유되는 순간, 그 골목은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죠. 골목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콘텐츠가 되고 있어요.

MZ세대의 골목 리터러시: 공간이 아닌 정서로 읽다
중요한 건, MZ세대가 골목을 단순한 공간이 아닌 정서로 이해한다는 점이죠. 익선동의 한 골목길에서 만난 25세 대학생 C 씨는 말했어요. 여기 오면 뭔가 위로받는 느낌이에요. 조용하고, 옛날 느낌도 있고요. 그들에게 골목은 과거를 '회상'하는 공간이 아니라, 현재를 '회복'하는 공간이 되고 있어요. 이들은 골목을 낭만으로 소비하지 않아요. 오히려 골목에서 진정성이라는 감각을 포착하고 있죠. 인위적이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그대로의 풍경. 그게 MZ가 골목을 사랑하는 이유이죠.

골목을 아카이브하는 MZ세대
골목의 재발견은 기록에서 시작돼요. MZ세대 중 일부는 골목의 풍경을 아카이브하는 활동도 하죠. 유튜버, 인스타그래머, 골목기행 작가들. 그들은 카메라를 들고 낡은 골목을 찾아다니죠. 철거 예정지를 미리 찍거나, 사라질 가게의 마지막 메뉴판을 기록하죠.
이런 디지털 아카이빙은 세대를 뛰어넘어 골목문화를 지키는 또 다른 방법이 되고 있어요.

 

골목의 재해석
골목의 재해석

 

내 어린 시절의 골목
내 어린 시절의 골목

 

 

 

 

내 어린 시절은 모두 그 골목에 있었다. 철길을 따라 흐르던 여름밤의 바람, 종이배처럼 가벼웠던 웃음소리도.
김훈 공터에서

뒤엉킨 골목과 초라한 담벼락들은 어쩐지 너무 낯익었다.
황석영 삼포가는 길

그 여자는 늘 저 아래쪽 골목 끝 방에서 나왔다. 창문도 없는 반지하에서, 나는 매일 그 여자의 발소리를 들었다.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 골목은 굽이져 있었고, 그 끝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좁은 골목길, 나를 부르는 오래된 가게의 종소리. 문득 그 소리에 마음이 머물렀다.
나태주 풀꽃 시집 중

그 골목은 이제 없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어린 시절을 잃었다.
정용준, 가나 중

 

 

골목 문화와 감성
골목 문화와 감성

 

 

 

에필로그
골목은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 마음속엔 여전히 살아 있어요. 가끔은 낡은 사진 한 장,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옛 노래 한 줄에도
그 골목이 불쑥 떠오르죠. 그러니, 지금 여러분이 걷고 있는 동네에도 그 작은 틈, 골목이 있다면 잠시 멈춰 서 보면 어떨까요?
그곳에 오래된 나무 하나, 작은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가 서 있을지 모릅니다.